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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뛰어난 음식 솜씨로 사랑 받아…'김치 할머니' 지선희 씨 별세

샌디에이고 한인사회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39년 간 요식업계에서 활동했던 지선희(사진) 여사가 지난 2월5일 자택에서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일명 '김치 할머니'로 불리던 고인은 빼어난 음식 솜씨로 한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남편 지옥근(1993년 작고) 씨와 함께 1986년 도미해 당시 샌디에이고 지역에서 제일 큰 한식당이었던 '코리아하우스(지금의 프라임 그릴 자리)'에서 근무하다 1989년 2월 아리랑하우스(지금의 '송학' 식당 자리)를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고향식당(지금의 전주집)', '반찬 및 김치 케이터링 전문점' 등을 운영한데 이어 '할머니 순두부' 식당을 운영해 온 한식 요리 전문가였다. 고인은 건강이 악화돼 몸이 힘든 최근까지도 자신의 김치를 찾는 이들을 위해 김치를 담가왔다.     유가족으로는 장남 지현수 씨('할머니 순두부' 대표), 차남 지용철 씨('올레' 대표) 등 2남 1녀가 있다. 고인의 두 아들 뿐 아니라 할머니의 영향을 받은 손녀들도 '두 엔 마이' 베트남 식당 등 5곳의 식당과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한인사회의 맛손인 김치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 고인의  장례 일정은 미정이다.  케빈 정 기자삶과 추억 할머니 지선희 김치 할머니 음식 솜씨 할머니 순두부

2025-02-06

[삶의 뜨락에서] 특별한 음식 맛을 내는 사람들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대여섯 친구들 모임이다. 그중에 한 친구가 죽기 전에 딱 한 끼만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묻는다. 말하자면 소울 푸드인 거지. 너도나도 한 가지 음식을 꺼내기 시작하자 나는 한 발짝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우리가 말한 소울 푸드의 스토리 대부분은 그 안에 엄마나 할머니가 등장했다. 우리 엄마가 가장 잘하는 메뉴가 돼지 두루치기야. 내가 언제 한 번 엄마한테 이거 단일 메뉴로만 식당을 차려도 동네 식당을 다 제압할 수 있다고 말한 적 있다니까. 나는 우리 할머니가 어릴 때 직접 끓여주신 단팥죽 맛을 못 잊어. 할머니랑 같이 살았거든. 내가 학교 갔다가 오면 할머니가 갈치조림도 해 주고 수제비도 해 주고 진짜 내가 먹고 싶은 거 다 해 주셨는데 나는 그중에 단팥죽이 그렇게 맛있는 거야. 다른 집 애들은 동지나 어떤 특별한 날에만 먹잖아. 나는 허구한 날 단팥죽 타령을 했던 거지. 우리 집은 그냥 가족이 다 잡채를 좋아해. 그래서 우리 동생이랑 나는 중학교 때 엄마 아빠 두 분 다 어디 가셔서 안 계시고 우리 둘만 밥을 먹어야 했는데 둘이서 잡채를 해 먹었어. 맨날 엄마가 하는 걸 봤으니까 어린 나이라도 그 메뉴는 너무 능숙한 거야. 잡채가 왜 맛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우리 집은 당면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는 것 같아. 진짜 거짓말 안 하고 우리 집은 당면에 간장만 부어도 좋아할걸. 죽기 전에도 아마 잡채를 먹고 있을 거야.     왠지 실제로도 그럴 만큼 그 정도로 좋아한다는 표현이라 너무 와 닿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된 느낌이었다. 나는 된장에 고춧잎을 넣어 삭힌 고추와 고춧잎이 제일 먹고 싶다고 말했다. 50년 전 한국 식품점도 없었는데 딸을 임신하고 입덧을 심하게 하면서 그 고춧잎이 먹고 싶어 누워 있으면 천정에 고춧잎과 고추가 그림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뉴욕마라톤에서 만난 지인이 김치를 김치 통에 가득 담아 주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해서 받아먹기가 조금 망설였다. 마켓에서 사 먹는 김치와는 전혀 다른 맛과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배추가 아삭거리고 배추 잎 사이사이에 들어간 양념이 달랐다. 파, 마늘, 무, 갓이 대충 보기에는 마켓 김치와 다르지 않았는데 씹히는 감촉이 달랐다. 살짝 물어보았다. 어떻게 담았기에 특별한 맛이 배어 있느냐고. 무엇하나 빠지지 않고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손으로 다듬고 어루만지면서 골고루 양념을 섞는다고 쉽게 말한다. 설탕 대신 배와 홍시를 갈아 넣고 무, 파, 마늘, 갓은 직접 채소밭에 씨를 뿌려 가꾼 유기농 농산물이었다. 한 포기를 아껴 두었다 식구들이 모이는 설날 가지고 갔다. 떡국과 같이 먹으면서 떡국보다 김치 맛이 독특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같은 양념에 똑같은 배추로 김치를 담그지만 맛이 다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음식을 잘하는 사람들은 양념과 배추의 조합을 특이한 감각으로 잘 맞추고 고춧가루도 보기 좋고 맛깔나게 배합을 잘하는 것 같다. 그리고 간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춘다. 소금으로 절이는 것도 시간과 배추 상태를 잘 파악하는 재치가 있다. 신경 쓰고 손맛까지 곁들이니 어찌 기이한 맛이 우러나오지 않겠나. 우리 친구 중에 농사를 기가 막히게 잘 지어 고추, 상추를 잘 얻어먹었다. 지금까지 농사와 음식 솜씨는 제일이라고 믿고 있었고 상추를 이모작을 해서 6월까지 밥상에 올라왔는데 이 지인은 상추를 3모작 하여 11월까지 상추를 먹는다고 했다. 3모작 상추 맛은 2모작과 맛이 조금 다를까. 양주희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음식 배추로 김치 음식 솜씨 고추 상추

2025-02-03

[수필] 봄이네

스무 해 전에 헤어진 캐나다 밴쿠버 지인들이 무척 그리워서 큰 마음을 먹고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하더니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갈수록 새록새록 더 선명히 떠오르는 얼굴도 있다. 오렌지카운티의 요바린다에서 캐나다 밴쿠버까지는 편도로 1300마일, 5번 도로를 따라 곧장 가도 꼬박 이틀 거리의 상당히 먼 길이다. 아직은 완전히 은퇴하지 못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몇 해가 훌쩍 지나버릴 것 같아서 우린 욕심을 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는 세월이었으니 낯익은 얼굴들이 그리워 스무 시간 넘는 장거리를 달렸다.     기왕 가는 길에 바람도 쐴 겸 395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애스펜의 가을 단풍이 수려한 비숍을 경유하고, 레이크 타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단풍이 무르익은 그 아름다운 경관과 고산지대 레이크 타호의 설경은 탄성을 자아낼 만큼 근사했지만, 사람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새벽같이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운 이들이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중얼거리면서….   세월의 흔적을 피할 수 없어 노쇠해진 분들,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 타지로 이주한 분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곳에 있었고, 만나는 이들마다 반가워 부여잡은 손을 놓지 못하고 길게 인사를 나누며, “하나도 안 변했어요. 여전하시네요!” 라며 서로 능청을 떨었다. 웃고 기뻐하는 모습이야말로 정말로 하나도 안 변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이었는데 왜 그리 어리석게도 바쁘게만 살았는지, 마치 나 없이는 세상이 멈추기라도 할 것처럼 줄곧 앞만 보고 달렸다.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그리 살았나 모르겠다. 이젠 가고 싶은 곳에 가보고,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면서 사람처럼 살아야겠다고 오래된 결심을 다시 꺼냈다.   물론 요즘도 그렇겠지만, 그 시절에 내가 담임하던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예배에 참석하지 못한 교우들, 심신의 고통이 있는 형제들, 연로하신 분들, 특별한 교제가 필요한 분들을 몇몇 교인들과 함께 가정이나 일터로 찾아가 심방하는 관습이 있었다. 교우들의 영육 간의 상태를 세세히 알게 되고, 그들을 격려하며 정을 돈독히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여러 나라에서 일해봤지만 이런 관습은 주로 한국인 교회에만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백인 교회를 담임했을 때 주중 심방을 하겠다고 했더니 신기하다며 의외의 반응이었다. 물론 이내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역시 필요한 이들이 필요할 때 미리 예약하고 목회 사무실로 찾아오는 것이 더 익숙했다. 문화 차이려니 했었는데, 요즘은 한인 교회들도 많이 달라진 듯하다.   내 또래의 J부부가 유난히 반가웠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표정과 태도는 너무도 낯익었다. 자녀들은 의젓하게 성장해 각자의 둥지를 틀고 열심히 살고 있다니 고맙고 기쁜 일이다. 이민 생활에서 자녀를 잘 키워낸 것만으로도 축하해주고 싶은 대단한 성공이다.     그곳에서 일할 때 J부부는 힘든 객지 생활 기반을 다지느라 애쓰는 전형적인 이민 1세대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매 자녀가 있었고, 부부는 도시 외곽의 사무실 밀집지역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은 IMF 사태가 막 터졌을 때였고, 세계 경제 역시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캐나다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기가 어려우면 손님이 줄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드문드문 오는 손님마저 저렴한 메뉴를 선택하고, 그러면 매상이 더 내려갔다. 몸과 마음이 지치게 되고 신앙적인 열의마저도 시험에 들게 되는 원치 않는 악순환이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북돋우고 싶어 그들의 일터를 자주 찾고 함께 하늘의 도우심을 간구하곤 했었다.   한참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던 J부부가 정색을 하며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단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던 옛 이야기를 꺼낸다. “그때 음식을 더 찾으셨는데 다 떨어졌다고 거짓말을 하고, 더 드리지 못했던 것이 지금껏 마음에 걸려서 언젠가 꼭 말씀을 드리려 했습니다. 사실 그 음식은 차마 더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어려운 시절에 가계에 들렸으니 나부터라도 음식을 좀 팔아주고 싶었다. 무슨 음식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음식이 아주 맛있다며 더 청했단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인데, 먹으러 안 오는 이들은 막심한 손해를 보는 것이며, 주인장은 내가 인증하는 음식 솜씨로 조만간 분명히 어려운 시기를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던 거였겠지….     그런데 그 음식이 다 떨어졌다며 양해를 구하고는 나를 그냥 일어나게 하였단다. 아주 고약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그런데 그 어려운 시절에 손님은 자꾸 줄고 너무도 어려워서, 아주 감칠맛 나는 조미료를 많이 넣고 조리했었는데, 음식 맛 모르는 담임 목사가 맛있다며 더 청하는데 도저히 더는 줄 수 없었다고, 그래서 음식이 떨어졌다며 둘러댔고, 그때의 일이 몇 십 년이 지나도록 가슴에 걸렸단다.     참 잘한 일이네, 무슨 미안해하고 그걸 사과를 해. 사랑스러운 내 친구들. 우리는 부둥켜 안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함께 웃어댔다.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세월을 막을 수야 없겠지만, 그들은 이제 은퇴하고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큰 아이 이름이 ‘봄’이다. 앞으로 저들의 삶이 허락된 날까지 내내 아름다운 봄이기를 바라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하늘에 빈다. 하늘이 이런 기도는 잘 들어주셔야 한다. 유진왕 / 수필가수필 음식 솜씨 그때 음식 캐나다 밴쿠버

202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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